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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를 세상에 알린 영화 <박열>

by 기업 채용 소식통 2023. 9. 20.

박열 포스터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박열 (이제훈)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도쿄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왕세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자진해서 체포됩니다. 이후 자기 목숨과 맞바꾼 재판에서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려는 행위를 규탄하면서 많은 조선인들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가네코 후미코 (최희서)
일본인 아나키스트로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에 반해 무작정 그를 찾아가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대범한 성격입니다. 박열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옥살이 중에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후세 다쓰지 (야마노우치 타스쿠)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예비 심판이 되었으나 조국이 일으킨 전쟁과 제국주의에 회의를 느끼며 인권 변호사로 전향합니다. 주로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에게 "우리 변호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호 또한 후세 다쓰지가 담당합니다.

미즈노 렌타로 (김인우)
1919년 조선 총독부의 정무총감으로 3.1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많은 조선인들에게 원한을 샀던 인물입니다. 이로 인해 관동대지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을 이용하기로 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립니다.

다테마스 가이세이 (김준한)
갑작스레 상사인 미즈노 렌타로에게서 박열을 취조하라는 강압적인 지시를 받은 검사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무례한 태도로 취조합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순조롭게 협조하는 박열과 후미코를 보고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 다른 계획을 꾸민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열

영화 박열은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아내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2017년 개봉했습니다.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00년 영화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던 중에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박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큰 매력을 느낍니다. 이후 야마다 쇼지의 <가네코 후미코 평전>을 기초로 일본 주요 언론사에 박열과 후미코의 재판 기사들을 요청해 가면서 자료를 보강했습니다. 이처럼 자료 조사를 심도 있게 한 이유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일본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에도 내용에 신빙성을 갖게 하고 싶었고 박열과 후미코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가치관을 제대로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감독이 독립운동가 박열의 인생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당시의 관동대지진의 참사를 좀 더 자극적이고 실감 나게 표현할 수도 있었으나 관객이 주인공의 내면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여겨 자제했다고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섬세한 고증에 집중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함과 모순을 정당한 논리로  깨부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활약

주인공 박열(이제훈)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3.1 운동과 관련되어 퇴학을 당하게 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 배달을 하면서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 나갔고 도쿄에서 인력거꾼으로 일을 하며 핍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열이 일본어로 쓴 시 <개새끼>를 교정하다가 시 내용에 감명받은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는 박문자라는 조선 이름을 만들고 그를 직접 찾아가 같이 동거하며 투쟁하자는 제안을 하고, 둘은 동거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 시기에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은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이른바 '사회주의 오뎅집'이라는 아지트에서 폭탄 테러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후미코도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은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의열단을 통해서 일본 내로 폭탄 반입을 시도했으나 삼엄한 경비 끝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동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도심 전체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하며 아수라장이 됩니다. 일본 정부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들이 일본의 왕세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이에 반응하여 자경단은 조선인 6천여 명을 대량학살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박열과 후미코는 이 폭동을 일으킨 주범으로 반역죄로 기소되자 아무리 부인해도 어차피 누명을 벗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재판을 역으로 항일운동에 이용하기로 합니다. 박열은 첫째, 조선의 대표로 법정에 서는 것이니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해 줄 것 둘째,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강도 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나의 취지를 선언케 할 것 셋째, 조선말을 쓸 것이니 통역관을 세울 것 넷째, 재판관과 나의 앉을 자리를 동등하게 할 것이라는 황당한 조건을 내세우며 당당한 태도로 재판에 임합니다. 둘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사형이 선고되자 만세를 외치며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후미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20년 후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일왕은 즉각 항복을 선언합니다. 45년 8월 15일. 드디어 35년의 식민지 시대가 끝이 나고 조선은 해방됩니다.